사회

홍범도는 영웅인가? 역적인가?

칼궁 2023. 9. 15. 05:49

https://n.news.naver.com/article/023/0003787922?cds=news_edit

홍범도의 고백 “1922년 레닌 만난 건 自由市 참변 보고 위해서였다” [유석재의 돌발史전]

홍범도에 대한 추가 팩트 세 가지 유석재의 돌발史전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79194 독립운동가 홍범도(1868~1943) 장군의 흉상을 육군사관학

n.news.naver.com

https://youtu.be/DHOp1ugopxY?si=iWi6qjle59CaMugx

레닌이 선물한 권총 찬 홍범도 - 1922년 1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코민테른 주최 극동민족대회에 참석한 독립운동가 홍범도. 차고 있는 권총은 레닌이 선물한 것으로 알려졌다. /독립기념관

독립운동가 홍범도(1868~1943) 장군독립군이 요즘 논란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그의 흉상이 지난 정부 때 육군사관학교에 세워졌을 때만 해도 큰 논란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홍범도는 독립운동가는 맞겠지만 그가 영웅도 아니며 배신자, 즉 역적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저도 어릴 때부터 천산리대척이야기를 배웠고 홍범도가 독립운동가이며 영웅으로 배웠기에 이 기회에 홍범도에 대한 내용을 다시금 찾아봤습니다. 영웅이라고 이야기하는 내용은 진영의 논리에 빠질 위험이 있기에 그래도 이 부분에서는 자유롭다 여겨지는 전한길 강사의 영상을 참고하였으며, 역적이라는 내용은 조선일보를 참고했습니다.

1. 독립운동가 맞나?

두 자료에서 모두 홍범도가 청산리대척과 같은 독립군에서 활동한 것은 동의하고 있습니다.

2. 자유시 참변에 관여했는가?

전한길 강사의 말에 의하면 홍범도는 자유시 참변에서는 자유롭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자유시 참변 당시 첫날에 그는 자유시에 없었다는 것이지요. 뒤늦게 자유시에 도착한 홍범도는 같은 민족끼리 서로 죽이는 모습에 실망하였고 당시 소련의 고려인들에 대한 중앙아시아로의 이동 시에 같이 이동하여 이주한 고려인들과 함께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홍범도가 역적이라는 쪽의 이야기는 자유시 참변에 있어 그가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홍범도가 1938년 무렵 직접 쓴 1차 사료가 있습니다. 자서전인 ‘홍범도 일지’입니다. 이 내용은 2014년 반병률 한국외대 교수가 펴낸 단행본 연구서 ‘홍범도 장군’(한울아카데미)에 수록돼 있습니다.

“1921년 동지달에 모쓰크와로 레닌동무게로 1921년 자유시에서 조선빨찌산을 어간에 뉴혈적 사변이 난데 대한 보고을 하려고 조선빨찌산대표로 갇다.”

레닌

즉, 레닌을 만난 이유가 ‘자유시 참변 보고를 하기 위한 것’이라고 스스로 밝히고 있습니다.

자서전의 본문에선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레닌께서 저를 불러오라고 사단이 내려옴으로 제 레닌께 들어가서 뵈온 일도 있고 말씀에 대답한 일도 있다. 자유시 사변을 묻는데 몇 마디 대답한 일도 있다.”

이 자리에서 홍범도는 레닌으로부터 금화와 권총을 선물 받았습니다. 홍범도는 이 권총을 줄곧 차고 다녔고, 1923년 그를 배신자로 몰아 암살을 시도하려는 감창수·김오남에게 이 총을 쏴 살해한 일도 있었습니다. 전후 정황상 레닌의 ‘하사품’은 항일 투쟁의 공로가 아니라 자유시 참변 때의 행동에 대한 보상으로 보입니다.

또한 그는  1922년 자유시 참변 당시 볼셰비키 진영의 주도로 많은 한국 독립운동가들이 희생된 직후 재판위원을 맡아 볼셰비키 편에 섰다는 것은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그 근거로는 소련의 비밀문서에 그의 이러한 행동이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1922년 1월 모스크바의 원동민족혁명단체대표회 개막식 영상에 나온 참석자들. 가운데 코트를 입고 콧수염을 기른 이가 홍범도 장군(키 190㎝)이다. /독립기념관

3. 소련 귀화와 공산당 입당에 대해

전한길 강사의 말에 의하면 홍범도가 독립운동 당시 소련의 공산당 사상을 가졌던 무리에서 싸운 것은 사실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흠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 당시 상황에서는 독립이라는 같은 목적하에 같이 모여 힘을 합친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이 부분에 있어서는 저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그가 27년에 소련 공산당에 입당하였고 카자흐스탄의 극장에서 살아간 것은 먹고살기 위해 피치 못해서 한 것이지 국가에 대한 배반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홍범도가 역적이라는 쪽에 의하면 1922년 1월, 홍범도는 매우 먼 여행을 떠납니다. 모스크바에서 열린 극동민족혁명단체회의의 개막식에 참석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그는 소련의 국가원수인 인민위원평의회 의장 블라디미르 레닌(1870~1924)을 만납니다. 홍범도가 레닌을 만났다는 사실은 국내에도 1980년대 중반 이후에야 알려졌습니다.

그런 그가 27년에 정식으로 소련의 공산당에 입당하였다는 것입니다.

4. 자유시 참변 이후의 홍범도
그가 자유시 참변 이후 독립운동과 상관없는 삶을 산 것에 있어서는 양쪽의 의견이 동일합니다.

결론.
홍범도가 영웅인지 역적인지는 아직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당시의 시대 상황도 있고 제가 이러한 사실을 정확히 아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만약 역적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그가 분명히 역적임은 사실 같습니다. 그런 자라면 이 나라의 장군들을 배출하는 육군사관학교에 있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진실은 무엇일까요? 앞으로 더 관심을 가지고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